[이등병의 추억]
1995년,
이 해가 시작하자마자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으로 말그대로 세상을 흔든 두 개의 컨텐츠가 탄생한다.
노래 ‘잘못된 만남’, 그리고 드라마 ‘모래시계’ 다.
‘그 어느날 너와내가 심하게 다툰 그 날이후로 ~’ 로 시작하는 김건모 님의 3집 타이틀 곡 ‘잘못된 만남’
새해로 넘어오면서 발표된 이 곡이 길보트차트 - 당시에는 인기곡들을 복제녹음해서 길에서 팔던 시기 - 를 장악했고, 어디를 가나 이 노래가 울려퍼졌다. 겨울의 한 가운데인 1월을 이 노래의 열기로 녹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나 떨고있니?’ 라는 최민수 님의 명대사가 빛났던 모래시계는 1~2월에 방영되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60%가 넘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찍기도 했다.
귀가시계라고 불리우면서 방송시간에는 거리를 한산하게 만든 바로 그 드라마였다.
두 개의 선풍적인 컨텐츠가 대중을 홀리던 그 시기에 난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두 컨텐츠를 맘껏 즐기지는 못했지만 군 입대전의 긴장감으로 기억에는 더 잘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2월이 되면서 난 군인이 됐다.
입대 후 훈련병시기를 보내고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또 하나의 노래가 세상을 강타했다.
‘천사를 찾아 싸바~, 싸바~, 싸바~~’
바로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다.
이 노래는 나의 이등병 시절 기억의 치트키이다.
이 곡을 들으면 나의 군 생활이 떠오르고, 나의 군 생활을 떠올리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
어쩌면 이등병 시기에 나와서 더욱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장난끼 있고 내무반 내에서 힘 있는 고참하나가 “나 이제 알아” 하고 룰라의 이상민 님 파트를 부르면서 마이크를 쥔 손동작을 내 입에 가져다 댄다. 그러면 이등병인 나는 “혼자된 기분은 그건 착각이었어” 라는 김지현 님의 파트를 부른다. 그것도 점호시간 직전 침상에 부동자세로 대기 하는 중에.
물론 처음엔 반응하지 않는다. 실제 군기가 들어 있든 군기가 든 척을 하는 것이든 중요치 않다. 속내가 어떻하든지 중요한 건 반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이런 장난을 치는 고참은 내무반에서 힘이 있기떄문에 그 엄격한 점호시간에 장난을 칠 수 있는 것이고 내 입이 떨어질 때까지 웃으며 압박하기 때문에 나는 한가지 선택을 해야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다른 이들은 그 상황을 즐기거나 주시할 뿐이다. 신병인 내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는 것이다.
'군기로 버티느냐, 고참의 압박에 굴복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적당히 눈치가 있는 나는 두 세번 무반응으로 튕기다가 마지못해 내 몫의 소절을 부른다.
그렇게 고참의 장단을 맞춘다. 물론 장난친 고참보다 윗 사람 몇몇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웃지 않는다. (사실 내가장단을 맞춘 그 상황도 가능한 내무반이 있고, 절대 불가능한 내무반도 있다. 절대 불가능한 내무반에서 나처럼 반응했다가는 다음날 고통스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사실 '날개 잃은 천사' 이 곡을 들으면 흥이 많이 올라간다. 곡 자체가 좋다. 멜로디가 신나고 이상민 님의 랩에서 김지현 님의 보컬로 전환되는 클라이맥스의 조화가 매력적이며 김지현 님과 채리나 님의 엉덩이 춤 또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증폭시킨다. 좋아할 만한 요소를 다 갖추었다.
군기가 바짝들어 있을 이등병 시기를 장식했던 노래. 하지만 이 노래가 힘들거나 불편한 기억들을 연상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군 시절을 기분좋게 회상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나만의 군가일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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