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이야기로 완성하는 짧은 에세이/10곡의 노래로 기억하는 그 시절 이야기

10곡의 노래로 기억하는 그 시절 이야기(6) - 날개 잃은 천사

작가상비군 2024. 9. 25. 06:00

[이등병의 추억]

 

1995년,

이 해가 시작하자마자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으로 말그대로 세상을 흔든 두 개의 컨텐츠가 탄생한다.

노래 잘못된 만남’, 그리고 드라마 모래시계.


그 어느날 너와내가 심하게 다툰 그 날이후로 ~’ 로 시작하는 김건모 님의 3집 타이틀 곡 잘못된 만남 

새해로 넘어오면서 발표된 이 곡이 길보트차트 - 당시에는 인기곡들을 복제녹음해서 길에서 팔던 시기 - 를 장악했고, 어디를 가나 이 노래가 울려퍼졌다. 겨울의 한 가운데인 1월을 이 노래의 열기로 녹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나 떨고있니?’ 라는 최민수 님의 명대사가 빛났던 모래시계는 1~2월에 방영되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60%가 넘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찍기도 했다. 
귀가시계라고 불리우면서 방송시간에는 거리를 한산하게 만든 바로 그 드라마였다.

 

두 개의 선풍적인 컨텐츠가 대중을 홀리던 그 시기에 난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두 컨텐츠를 맘껏 즐기지는 못했지만 군 입대전의 긴장감으로 기억에는 더 잘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2월이 되면서 난 군인이 됐다.

입대 후 훈련병시기를 보내고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또 하나의 노래가 세상을 강타했다.

천사를 찾아 싸바~, 싸바~, 싸바~~’

바로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다.

이 노래는 나의 이등병 시절 기억의 치트키이다.

이 곡을 들으면 나의 군 생활이 떠오르고, 나의 군 생활을 떠올리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

어쩌면 이등병 시기에 나와서 더욱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장난끼 있고 내무반 내에서 힘 있는 고참하나가  나 이제 알아하고 룰라의 이상민 님 파트를 부르면서 마이크를 쥔 손동작을 내 입에 가져다 댄다. 그러면 이등병인 나는 혼자된 기분은 그건 착각이었어라는 김지현 님의 파트를 부른다. 그것도 점호시간 직전 침상에 부동자세로 대기 하는 중에.

물론 처음엔 반응하지 않는다. 실제 군기가 들어 있든 군기가 든 척을 하는 것이든 중요치 않다. 속내가 어떻하든지 중요한 건 반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이런 장난을 치는 고참은 내무반에서 힘이 있기떄문에  그 엄격한 점호시간에 장난을 칠 수 있는 것이고 내 입이 떨어질 때까지 웃으며 압박하기 때문에 나는 한가지 선택을 해야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다른 이들은 그 상황을 즐기거나 주시할 뿐이다. 신병인 내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는 것이다.

 

'군기로 버티느냐, 고참의 압박에 굴복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적당히 눈치가 있는 나는 두 세번 무반응으로 튕기다가 마지못해 내 몫의 소절을 부른다.  

그렇게 고참의 장단을 맞춘다. 물론 장난친 고참보다 윗 사람 몇몇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웃지 않는다. (사실 내가장단을 맞춘 그 상황도 가능한 내무반이 있고, 절대 불가능한 내무반도 있다. 절대 불가능한 내무반에서 나처럼 반응했다가는 다음날 고통스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사실 '날개 잃은 천사' 이 곡을 들으면 흥이 많이 올라간다. 곡 자체가 좋다. 멜로디가 신나고 이상민 님의 랩에서 김지현 님의 보컬로 전환되는 클라이맥스의 조화가 매력적이며 김지현 님과 채리나 님의 엉덩이 춤 또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증폭시킨다. 좋아할 만한 요소를 다 갖추었다.

 

군기가 바짝들어 있을 이등병 시기를 장식했던 노래. 하지만 이 노래가 힘들거나 불편한 기억들을 연상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군 시절을 기분좋게 회상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나만의 군가일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