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이야기로 완성하는 짧은 에세이/10곡의 노래로 기억하는 그 시절 이야기

10곡의 노래로 기억하는 그 시절 이야기(5) - 1994년 어느 늦은 밤

작가상비군 2024. 9. 22. 11:10

[30년 차이 폭염 vs 폭염]

 

  2024년, 올해의 더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더욱이 추석이라는 가을향기 물씬 풍기는 명절조차도 폭염과 열대야로 신음하면서 정확히 30년 전 여름을 떠올린다.

 

 1994, 내 인생 가장 강렬한 더위가 찾아왔던 여름이다.
그리고 떠오르는 노래는 장혜진 님의 ‘1994년 어느 늦은 밤
제목에서부터 1994년을 담고 있어 이 노래가 그 때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장혜진 님의 울먹이는 보컬에서 나오는 아련한 옛사랑의 기억같은 노래 분위기는 제목보다 더한 추억회상의 힘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1994년에 대한 기억은 더운 여름이다.

그 여름 나는 서울 중심의 한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어떤 장소보다 에어컨이 부족함 없이 작동하는 공간이지만 그 시원함 만을 온전히 누리는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빈번하게 오가던 제품창고는 지하주차장과 옥상에 있었다. 백화점 건물에서 가장 더운 공간들이다. 두 곳 모두 제품재고 외에 더운 열기도 고스란히 함께 저장하고 있어서 물건을 찾고 꺼내어 나오기 위해 1, 2분만 지체해도 순식간에 땀샘은 개방되었다. 알바생으로서 내가 맡은 주된 업무가 제품창고와 매장을 오가는 것이 일이었기에 흡사 냉온탕을 오가는 모양새였다. 물론 시원한 매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음은 사실이지만 그 때 느꼈던 더위의 자극은 기억속에 또렷이 박혀 있다.

 

 1994년의 폭염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기억이 있다.
그 해는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축구 개최의 해였고 개최지는 미국이었다.
대한민국은 스페인, 독일, 볼리비아와 한 조였는데 결과는 21패로 예선탈락.
그래도 강팀인 스페인과 독일을 상대로는 각각 두골씩을 넣으면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무엇보다 마지막 경기였던 독일전은 폭염과 함께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감히 이야기하자면 경기시간이 10분만 더 주어졌다면 우리가 이겼을 것이다. 후반전 중반부터 독일의 공격수들은 제대로 뛰지 못했다. 아니 걸어다니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점수차이가 커서 수비에 집중하는 전술을 펼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더위에 지쳐 뛰지 못하는 모양새 그 자체였다. 그 떄 독일의 스트라이커가 바로 클린스만 최근 오점을 남긴 한국축구 감독 - 이었다. 그의 화려한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해트트릭에 30으로 끌려가던 우리는 이후 2골을 따라갔고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경기장의 반만 사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독일진영에만 있었다. 독일은 공을 걷어내기 바빴다. 걷어낸 공이 우리진영으로 넘어와 독일의 역습찬스가 와도 클린스만은 공을 쫓아 뛰는 것을 포기했다. 폭염에 독일공격수들의 남은 체력은 없었다. 동점을 만들기 위해 정신력만으로 파상적인 공격을 퍼붓던 대한민국에게 시간이 주는 아쉬움은 컸다. 그렇게 예선탈락을 확정지었지만 우리 선수들의 정신력만큼은 완벽한 승리였다. 

 

 7월에는 북한의 김일성 사망소식도 전해졌다. 가짜뉴스설부터 전쟁이 날 것이라는 유언비어까지 불안한 분위기가 나와 같은 젊은이들 사이에 형성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24년 여름은 혹독한 폭염과 열대야를 지구에 선사했다. 1994년과 달리 기후위기의 결과라는 강력한 경고와 함께.
이제 1994년이 가장 더웠다는 나의 기억은 2024년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확히 30년이 흐른 지금이다.
앞으로 다시 30년이 지나 2054년이 되면 어떤 기후변화가 그리고 세상의 변화가 일어날까?

이제는 조금 두렵다.

 

더위를 떠올리는 노래는 아니지만 '1994년 어느 늦은 밤' 을 들으면서 2024년의 지긋지긋한 더위와 1994년이 가장 더웠다는 기억도 함께 보낸다.

                                                                                                                                                                                  끝.